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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27 11:52
[유머] 서태지공백기에대한고찰
 글쓴이 : 강선풍기
조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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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서태지닷컴에서 펐어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한 후에 2007년 1월 현재 장장 15년 동안



팬들은 12년 6개월을 기다렸고..겨우 30개월 정도만 본듯 안본듯 합니다ㅠㅠ





아래의 합성사진이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글까지 펐습니다..







제   목 : 공백기 창시자의 여섯번째 공백기    



작성자 : 키엘





주장하다보면 결국 부질없어지는 게 '***는 우리 오빠(혹은 우리 팬들)이 원조'라는 거지만

, 대체로 다른 팬업계 종사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 '대중가요계에서 '앨범 내고 활동-활동

접고 휴식하며 앨범 작업'이라는 패턴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사람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거죠. 이 '사실'까지는 대체로 일치합니다만 그 다음부터는 이게 '에너지를 소모시키려는

방송 권력에 맞서 가수로서의 주권을 내세운 사례'로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치고 빠지

는 식으로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상술의 극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글은 의미

부여에 신경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 논란은 패스하기로 하죠.(그리고 제가 써봤자 전자

로밖에 더 보겠어요?-_- 전 서빠인걸요-_-) 제가 집중하려는 건 바로 이 '공백기'라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사실 활동을 쉰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죠. 서태지 이전에도 한동안 방송활동을 쉬었다가

앨범 내고 재개하는 가수들은 많았습니다. 차이는 이 사람 같은 경우에는 가만 놔뒀다간

1년 내내 가요 프로와 쇼 오락 프로와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그리고 이 사람 인기가 사회

현상이 되어가면서부터는 시사 프로까지 매주 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 방송출연, 콘서트, 각종 행사 출연을 비롯한 공식 활동을 아예 접어버리

겠다고 선전 포고를 한 겁니다. 처음엔 건방지다고 꽤나 욕을 먹었고 공백기 동안 이 사람

들을 벤치마킹한 각종 댄스 가수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질 것이라는 예측도 꽤나 신빙

성있게 나왔었죠. 하지만 2집도 성공하면서 이 '공백기'까지 벤치마킹의 패턴으로 들어가

버린 겁니다. 사실 이 때도 서태지씨처럼 두문불출 지하실에 틀어박혀 지방 공연에 시상식

까지 고사하는 공백기를 가지는 건 아니었죠. 하지만 최근까지도 가요프로그램에서 거한

'컴백 무대'와 '굿바이무대'는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태지씨가 8집을 준비하는 여섯번째 공백기(왜 '8집'을 준비하는

데 '여섯번째' 공백기냐고요? 오호호호호호호;;;;)를 가지고 있는 이 시점, 십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 '방송활동'이 의미를 가지는 가수들 중 상당수는 앨범 발매가 활동패턴을 좌지우지

할만 유일한 요인은 아닙니다. 드라마도 찍고, 해외 활동도 하느라 바쁘죠. 거기다 가요 프로

그램 시청률이 속옷 노출 사건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별 관심도 끌지 않는 한자리대 시청

률에 머무는 요즘엔 실속있는 오락프로그램에 불러주면 열심히 뛰어야 살아남는 시대죠.





그런데 공백기 창시자인 서태지씨는 공백이 점점점점 길어져서 이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를

지경입니다; 일단 시기별로 살펴보도록 하죠.





첫번째 공백기:1992.11.17~1993.6.19

공식적으로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한 때부터 다음 컴백할 때까지 7개월이 걸렸지만, 이때는 92년

시상식과 각종 행사에 띄엄띄엄하게나마 활동을 했었다는 걸 감안하면(사실 이 연말에 활동한

것은 7집때 공식적으로 활동한 때 빈도에 비해 더 활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92년 말에

활동을 많이 한 것인지, 7집때 활동을 적게 한 것인지는 상대성의 문제이므로 각자의 가치판단

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동안 파시통통

씨엡-_-도 찍었고, 앨범 작업을 다 했고, 레코딩을 했으며, 안무를 짰고,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완성했고, 의상 컨셉을 잡았으며, 매니지먼트 계획을 다 잡았으며...결정적으로...



'silence 222'라는 아주 훌륭한 영상집을 찍었습니다!!! 6개월 방위생활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한 셈입니다.





두번째 공백기:1994.1.18~8.13(이 때부터 미묘하게 점점 컴백은 하반기 뒤로 넘어갑니다)

이 때부터 공백기는 6방으로 치기도 미묘하게 점점 길어집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앨범작업하러

미국에 출국하는 패턴이 시작되었죠. 앨범작업에서 샘플링이 대폭 줄어들고 사운드에 대한 집착

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앨범 작업기간이 늘어난다는 말과 등가가 되겠습

니다. 여하튼 이 때에도 공백기간 동안 팍스 뮤지카 등 해외 공연과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완성,

안무와 컨셉 확정, 컴백 콘서트 준비 등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번째 공백기:1995년 1월 16일~1995년 10월 6일.

다른하늘이 열리고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대략 두 달 정도 방송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걸 감안

한다면 이 공백기는 10개월이 넘어간 셈입니다. 컴백은 이제 완전히 가을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오빠님의 컴백은 언제나 두둑하게 껴입을 때 이뤄져서 반바지는 고사하고 반팔

도 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ㅁ;) 3집활동이 백워드매스킹과 출연 금지 등으로 꽤나 난관이 많았

는지라 이 길고긴 공백기(서태지씨와 다른 연예인들과 차이점은 본인이 두문불출하는 한 기자든

일반인이든 팬이든 아주 공평한 조건-'아무도 모른다'에 놓여있다는 겁니다;)동안 꽤나 흉흉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_- 유례없이 길었던 이 공백기간은, 꽤나 충격적인 단발머리

와 선글라스 비주얼을 앞세운 d-30 광고까지 하면서 궁금증을 증폭시켰죠. 결과는 히트였습니다.



...그리고 이 활동은 석달을 갓 넘길 무렵 은퇴 뉴스가 터지고, 한 달 가까운 잠적 끝에 은퇴를

함으로써 끝나게 됩니다-_-





네번째 공백기:1996년 1월 31일~2000년 9월 9일

아아, 물론 98년에 솔로 1집이 나오고 뮤직비디오 두 편으로 활동하긴 했습니다만...전 얼굴

안 보이면 공백기인 겁니다-_- 뭐 하긴 이건 아예 음악이고 뭐고 안 할 줄 알았다가 돌아온

거니 그저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넙죽-이렇게 된 거니 공백기고 뭐고 툴툴거릴 계제가 아

니긴 합니다, 쳇-_-





그럼 대체 그 5년간의 시간 동안 앨범 두 장 만드는 거 말고 뭘 한 거냐-라는 것에 대해선

안녕-나 돌아왔어-팬들한텐 미안해-근데 나 안 좋아하는 사람들한텐 안 미안해-하고 캐발랄

하게 돌아온 이 사람 입에서는 거지꼴이었다던가, '밤마다 별을 봤다'라는 가사 말고는 뭐

쓸만한 정보가 나오는 게 없습니다. 말을 해 주지 않는 이상 팬들도 절대 못 묻습니다. 저도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안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뭐 이런

비굴한 사이가 있는지 열받습니다-_-





다섯번째 공백기:2001년 2월 3일~2004년 1월 27일

'태지의 화' 앵콜콘서트에서 트라우마를 제대로 헤집혀서 폐비처럼 서럽게 울어제끼는 팬들

과 이를 외면하고 색소폰만 불어제끼는 대니정씨(...)를 역시나 캐발랄하게 뒤로 하고 활동

을 중단한 서태지씨는 '카밍 쑨~'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으나 또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3년 동안 공백기가 생겼습니다. 그간 팬들에겐 프로스펙스 앨범이라든가, 일

본 앨범이라든가, 썩소가 매우 알흠다웠던 feel the soul 뮤직비디오라든가, 괴수 레이블이

라든가, 공식 사이트라든가 그런 것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공백기가 길었다는 것

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합니다. 6방에서 특전사로 복무기간이 늘어났으니 이거 원 참;

팬들은 처음엔 '말뚝 안 박는 게 어디야'라고 트라우마에서 채 못 벗어나 스스로 위안하다,

중간엔 오빠님의 컴백을 가로막는 여러 외부의 요인들에 대해 저주를 퍼붓다가, 나중엔

지쳐서 '아예 거기서 살지 그래?'라고 뎀볐으나 오빠님이 '(신보) 레코딩 다 지운다'고

협박하니 바로 넉다운-_-;;; 애당초 게임이 안 됩니다.





여섯번째 공백기:2004년 8월 31일~현재.

서빠 인생은 '낚임'의 연속. '곧 온다'라는 그 의미가 '엄마 돈 많이 벌면 데리러 올게'

처럼 기약할 수 없는 미래임을 직감하면서도 이번엔 빨리 오겠지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

이죠. 또 하나, 이 사람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설마 마흔 되기 전에 앨범 두 장은 더

내야 될 텐데(당연히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서른 다섯 전엔 안 오겠냐'라는 이론이 상당

한 지지를 얻었습니다만...나이도 초월하는 것이 오빠님의 미모(전혀 관계없다;) 서른 넷

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고 서른 다섯이 되어도 기별도 없으며 서른 여섯이 된 지금은 '설마

대선때는 피해서 일찍 나오지 않겠냐'라는 기대도 무색하게 전혀 구체적인 시기가 드러나

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손에 남은 것은 7집 라이브 앨범과 dvd 패키지 두 개, '나 이러고

잘 놀아'라는 짤막한 동영상 하나, 그리고 생일과 크리스마스때마다 올라오는 글들-_-

개중 2006년 활동내역은 특기할 만한데...

2006년 2월 21일:자신의 생일을 자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2006년 12월 24일: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알씨 레어 샀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두 개가 답니다.





아, 좋아요 좋아. 오빠님은 오빠님이니까 7집 활동 스케줄이 동 시기에 활동했던 코요태

한 주일 스케줄보다 작다든가, 오빠님보다 6~7년 늦게 데뷔한 애들이 10집을 바라보고 있

다든가 그런 건 비교할 게 안 된다고 합시다. 그래도 15년동안 팬질했는데 실제로 내가

보고 있었던 건 1집 8개월+2집 6개월+3집 5개월+4집 4개월+6집 5개월+7집 7개월=35개월

, 3년도 안 됐었고 3집에서 콘서트 준비에 두 달, 4집에서 은퇴때문에 쫓겨다닌 한 달,

7집에서 뮤직비디오 찍고 블라디보스톡 왔다갔다하고 공연 준비하고 ETP끝나고 출국하기

전에 시간 빈 두 달을 빼면 30개월...orz 사실 그 30개월도 제대로 봤냐면 글쎄요오오;;;]

그럼 내가 12년 6개월동안 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었던가...orz





이제는 이 모든 아픔을 개그로 승화시켜 딴팬애들은 '앤디 생일' 이런 샤방샤방한 검색어

를 조낸 두들겨서 생일선물로 하자고 작당할시, 우리는 '잠적 3년'이런 거나 검색어로

선물하자고 작당하질 않나, 오빠님은 은퇴 11주년인 1월 31일, 아픈 기억을 컴백일로 덮

어버리기 위해 컴백할 거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립니다.(당연히 안 믿기지만 그건 그냥 믿고

싶은 겁니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세월은 잘 갑니다. 설마 올해는 오겠죠. 어차피 원래

비굴한 팬습성, 튕겨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거 아니까 오면 반갑게 맞아드려야죠. 하지만

역시나 마음에 남는 한은 하나 있으니...





영상집! 영상집! silence 1000(헉;;;)



이런 거 발매하란 말야!!!



덧.당연히 이 글의 주제는 '영상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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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이글의 댓글에서 서태지는 돈떨어지면 한국온다 이런 리플 안달아주셨음 합니다. 유머자료에요.

뱀다리: 신해철 재즈앨범 들어보셨나요? 전 제법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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