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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30 10:28
[유머] [오유펌]요생(妖生)
 글쓴이 : 약선풍기
조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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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괴무덤



가을을 인정할수 없는 늦여름의 심술궂은 더위가 산을 오르는 이들을 괴롭힌다.

현아는 입구에서 만난 남자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요괴무덤으로 향했다.

등산로를 한없이 벗어난 길.

결국 한낯의 더위에 항복하고, 나무그늘을 찾아 엉덩이를 붙인다.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이며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이름모를 산을 향해 더위를 토해낸다.



나도 줄래?



현아의 배낭이 조잘거린다.



나도 줄래?



싫어.



현아는 갈증을 호소하는 배낭을 무시하고 다시 걷는다.

지금껏 그녀의 인생에서 이토록 열심히 무언가를 해본적이 있었을까.

걷는다.

걷는다.

열심히.



지금까지 낭비한 삶을 마치 걷는 것을 통해 되찾으려는듯 걷는다.



그리고 돌무덤.



층층이 쌓아올린 돌무덤.

자연이 세공한 돌덩이를 그저 쌓아올린 수천개의 돌무덤.



여긴가?



현아는 배낭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배낭이 비명을 지른다.

현아는 아랑곳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무덤가 한가운데 지어진 유럽풍 이층집.

불균형한 풍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튀어나와버린 어색한 모양새.

천부적으로 미적 감각이 결여된 듯한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 배낭을 끌고 이층집으로 향했다.



계십니까?



열려있으니 들어와.



현아는 너무도 간단히 집주인의 승낙을 받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때?



현아 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집주인.

복고풍의 복장이 촌스럽기는커녕 사내 여럿 홀렸을 법한 미모와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현아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이며 옷맵시를 뽐낸다.

한 없이 뻔뻔하다.



예뻐요.



현아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요괴무덤의 주인은 현아가 마음에 들었는지 뜨거운 차를 내온다.



이열치열.



뜨거워요.



그냥 마셔.

인간주제에 불평하지마.



네.



그리고 신선님이라고 불러.



네.



어떻게 왔어?



남자가 가르쳐줬어요.



어떤 남자?



현아는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킨다.



빨간색이 가르쳐줬어요.

이름은 소호.



그런 놈 몰라.



그도 그렇게 말했어요.



뭘?



신선님이 신선이 되기 전 일들은 기억 못할거라고.



여자 신선은 잠시 생각하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기억안나.

직접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도 요괴인가보군.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상식 안에서 붉은 동공을 가진 인간은 그 남자를 제외하곤 본적이 없다.



요괴는 여기 못 오나요?



당연하지.

여기는 요괴무덤이야.

살아있는 요괴는 못들어와.



현아는 자신의 배낭을 쳐다본다.

꿈틀거린다.

여자신선이 현아의 눈길을 따라 배낭을 쳐다본다.



저건 누구 머리야?



제 남자 친구요.

빨간눈이 신선님께 가져다드리면 알아서 처리해주실거라고 그랬어요.



부엌에 놔둬.



네.



현아는 배낭을 부엌으로 옮긴 후 거실로 돌아왔다.



이거.



현아는 여자신선에게 주먹을 펴 보인다.

머리를 묶는 끈.



이게 뭐야?



그 남자가 신선님께.



내가 왜 이걸 받아야 하지?



저야 모르죠.

그 남자가 그냥 전해주라고 했어요.



여자신선은 잠시 망설이다 받아들고 머리를 묶어본다.

맘에 든 듯하다.



신선님은 사랑을 해보셨어요?



아니.

신선이 되려면 반드시 처녀의 몸이어야했어.



그렇구나.

지금 몇 살이세요?



여자의 나이는 비밀.

대략 계란 삼사십판정도.



첫사랑과는 이루질수없다고 누가 그랬어요.



현아는 부엌을 쳐다보며 배낭속을 떠올린다.



진짜 그런가봐요.

전생을 알고 싶어요.

빨간눈이 그랬어요.

신선님이라면 전생을 볼수있게 해주신다고.



그 남자에게 부탁하지 그랬어?



그 남자는 제 전생을 볼수는 있지만 제가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능력은 없었어요.

그 남자 말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요?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



전생을 볼수 있게 해주시면 그 남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무슨 얘기?



신선님과도 관계된 이야기예요.



좋아 속는 셈 치고 해보자.

눈 감아.



현아는 눈을 감았다.



뭐가 보여?



아무것도.



집중해.



현아는 자신의 의미없던 지금까지의 삶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 갑자기 보였다.



뭐가 보여?



어떤 남자의 뒷모습.

빡빡이.

갑옷 입은 대머리.



그게 너야.

또 뭐가 보여.



배안 같아요.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요.

사극에서 보던 조선시대 포졸들의 모습.

얼굴은 마치 달걀귀신처럼 눈 코 입이 없는 윤곽만 있는 사람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얼굴까지는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거야.



달걀 귀신처럼 생긴 군인들이 저보고 스님이라고 불러요.



좋아 그럼 좀 더 들어가 보자.



현아는 다음 순간 갑옷을 입고 서있다.

단지 정신만이 들어 온듯, 육체는 현아의 뜻과 달리 저절로 움직인다.

주위에는 군인들이 분주히 뛰어다닌다.

현아는 배안의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바다위의 전쟁터.

적선이 보인다.

배위에는 일본도를 휘두르는 무사가 보인다.



어때?



하늘에서 들리는 신선의 목소리.

현아는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본다.

주위의 다른 이들은 하늘의 목소리에 반응이 없다.

아마도 현아에게만 들리는 듯 하다.



아무래도 전생에 승병이었던것 같아요.

시대는 임진왜란 아니면 정유재란 쯤 인것 같구요.



좋아 다음으로 가볼까.



네.



갑자기 배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심하게 흔들리는 선체.

배의 틈사이로 파고드는 폭풍우의 냄새.



현아의 창자는 배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아직 소화 안된 음식물을 개어낸다.

현아는 바닥에 토악질을 하며 외쳤다.



다음으로 빨리 넘어가 주세요.



성난 바다를 이겨낸 현아와 수십명의 조선 수군들이 이국적인 풍경의 해변가에 서있다.

부서진 판옥선이 땡볕아래의 모래사장에 볼쌍 사납게 드러누워 있다.

내륙으로 가는 무리들.

마을.

마을 입구에 쓰인 알수없는 글씨에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현아는 하늘을 향해 외친다.



여기 혹시 러시아인가요?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하늘이 대답한다.



러시아말은 모르지만 저 요상한 모양의 알파벳.

분명 러시아어 같아요.



현아는 일행들과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음침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마을.

어차피 현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육체.



그때 사방에서 적의를 가진 수십명이 달려든다.

입가와 목에는 말라붙은 피가 붙어있다.

느릿한 걸음.

섬뜻한 붉은 눈동자.



설마 이런 대낯에 흡혈귀?



현아는 일행들과 등을 맞대고 원을 만들어 요괴들에게 대항한다.

풍랑에 지친 난파선의 생존자들이 흡혈귀떼에게 하나둘씩 쓰러진다.



신선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주세요.



싫어.



현아는 어쩔수없이 두눈을 감고 역겨운 장면을 참아낸다.

눈을 감고 있어도 몸이 알아서 싸워주니 편하기는 했지만 살과 뼈를 가르는 칼날의 서걱거림이 싫다.

달걀귀신같은 조선 수군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싫다.

한치 앞자락에서 느껴지는 흡혈귀의 피비릿내가 싫다.

정말 싫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년의 목소리.

알아들을수 있는 우리말로 또박또박 들린다.



현아와 일행은 흡혈귀 무리를 뚫고 목소리를 쫓아달린다.

교회 앞에서 현아일행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남자아이가 있다.

다행히 흡혈귀들은 교회건물안까지는 따라 들어오지 못하는듯 했다.

밖에서 서성이며 돌팔매질을 해대는 흡혈귀들.

현아는 한숨을 돌리고 몸을 숙인채 교회안을 둘러본다.

현아일행을 교회로 불러들인 소년.

대략 열두세살쯤 되어 보이는 조선시대 복장의 남자아이.

구더기가 끓는 음식물과 사람의 시체가 즐비하다.



하늘에서 들리는 목소리.



재밌어?

전생.



한없이 얄밉다.

현아는 꾹 참고 하늘에 대꾸한다.



소년의 얘기로는 배가 난파되어 이곳에 갇힌 후, 함께 왔던 사람들과 가족들마저 모두죽고

혼자가 된지 보름쯤 되었다는군요.



잠깐만 기다려봐.



해가 뜨고 지기를 서너번.

마치 3배속 재생으로 시간을 돌리는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빠른 속도로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거나 사라졌다.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멈췄다.



해변가에서 들리는 소리.

지나가던 러시아 선박인듯 하다.

현아와 남은 서너명의 군졸 그리고 소년이 교회를 뛰쳐나와 달린다.

그 뒤를 쫓는 흡혈귀 무리.



해변가에 도착해보니 멀찍이 바다위에 정박해있는 이국의 배에서 떨어져 나온듯한 보트가 있었다.

작은 보트를 해변가로 끌어올리던 러시아 선원들이 흠짓 놀란다.

러시아 선원들은 현아 일행을 따라오는 흡혈귀 무리에 놀라 보트를 다시 물에 띄웠다.

결국 엎치락 뒤치락하며 보트를 얻어 타고 섬을 빠져 나온것은 현아와 소년뿐.



현아는 아관국의 상선으로 보이는 배의 갑판에 올라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했다.

다행히 선원 한명이 광동어를 할줄알아, 현아와 한자를 적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러시아와 조선의 국경근처 항구까지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받은후 러시아인들이 마련해준 선실로 안내 받았다.

선실로 내려온 현아는 아파보이는 소년을 살펴본다.

배가 난파되어 머나먼 이국의 이름 모를 섬에 갇혀있던 소년.

피를 빨아먹는 구라파의 요괴들에게 가족들이 죽임을 당한 소년.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고야 말았던 소년.

그 소년의 팔에 깊이 파인 요괴의 이빨자국.

생사를 가르는 추격전 중에 흡혈귀에게 물린듯하다.

소년은 그저 감정 없는 시선으로 현아를 바라본다.

현아의 몸이 바쁘게 움직였다.

대바늘을 찾아 든 현아는 소년을 발가벗기고 소년의 몸에 글씨를 새긴다.

한 바늘 한 바늘 정성스럽게, 소년의 몸에 깨알같은 크기의 글씨를 새긴다.

현아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금 제가 뭐하는 건가요?



하늘이 응답한다.



언뜻 보니 금강경의 내용을 소년의 몸에 새기고 있는 것 같구나.



왜요?



글쎄.

아마도 어린 소년이 요괴로 변하는 것을 막아보려고 하는 것 같아.



현아는 소년을 보았다.

평온한 눈망울.

그러나 고통을 참으려는 듯 굳게 다문 입술이 살며시 떨린다.

왜 전생의 기억속에서 이 소년만 달걀귀신이 아닌, 또렷이 눈코입이 붙어있는지 알수는 없다.

현아는 문득 자신에게 요괴무덤을 가르쳐준 빨간 눈동자를 가진 남자를 떠올렸다.



현아가 눈을 뜨고 일어났다.

촌스러운 유럽형 이층집의 거실.

여자 신선이 자신을 쳐다보고있다.



어때?

색다른 경험이었지?



현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더 보고 싶어요.



보여줄게.

대신에 너부터 얘기해줘.

이곳에 찾아온 계기.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한 빨간눈을 가진 남자에 대해서.



현아는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삼킨 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일은 한 달쯤 전에 일어났어요.





2.복수



화려한 오후.

휴일의 여유를 즐기는 수많은 인파가 강줄기를 따라 걷고있다.

현아는 땀에 절은 남자친구의 팔뚝을 꼭 끌어안고 강바람의 서늘함을 즐긴다.

단단한 근육이 적당히 붙은 남자의 팔뚝을 타고 전해지는 포근함.

현아의 연약함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줄것 같은 남자의 강인함.

현아는 햇살에 그을린 남자친구의 듬직한 팔뚝이 좋다.



자기야 다리 아파.



현아와 남자친구는 나무그늘에 앉아 다리를 뻗는다.



자기랑 영원히 사랑하고싶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해.

전생에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을꺼야.

그래서 이렇게 다시 만난것이라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는것.

인연이라는것.

그런게 있는것 같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은 영원해.

그래서 아름다운것 같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야 우리 다시 걷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둘은 강의 흐름을 따라 걷는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과 연인들이 서로 스쳐지나간다.

어느덧 해는 저물었지만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아스팔트의 열기는 도시에 머문다.



저녁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불꽃으로 그려내는 여름 밤하늘의 그림.



어두운 강가를 가득 메우던 인파가 하늘그림을 보기위해 하나 둘 사라진다.

현아와 남자친구는 그런 한적한 강가를 걷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

현아는 뚫어지게 어둠을 쳐다본다.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애꾸눈.

낯선 남자가 둘의 길을 막고 서있다.

애꾸눈이 현아를 향해 말했다.



내 이름은 소호.

한달전에 우연히 너를 본후 줄곧 따라다녔어.

운명.

나를 이 남자에게 안내해줄 운명.

그것이 너의 운명.



현아는 남자친구의 팔뚝을 꼭 껴안는다.



자기야 무서워.



남자친구가 현아를 조용히 밀치고 앞으로 나선다.

애꾸눈은 마치 도끼처럼 칼끝이 두꺼운 정글도를 꺼내든다.

애꾸눈이 남자에게 묻는다.



찾고자 하던 것 얻었는가?



현아의 남자친구가 대꾸한다.



세상은 끝이 있으니까 아름다운 법이겠지.



소호라는 남자가 왼쪽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어버리고 눈을 뜬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한줄기 붉은 빛.

소호의 새빨간 동공이 흔들린다.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얻은 깨달음치고는 참으로 소박하군.



다음 순간.

현아는 보았다.

소호가 칼을 쳐들어 남자친구의 목을 자른다.

남자친구는 별다른 저항없이 칼을 받는다.



땅에 떨어진 머리를 주워드는 빨간눈.

남자친구의 목없는 몸뚱이.

몸이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것처럼 사라지고 없다.

현아가 운다.

소호의 손에 들린 첫사랑의 머리가 현아를 향해 말한다.



울지마.

사랑은 영원해.

그래서 아름답지.

하지만 그 끝이 있으니까 더욱 아름다운 법이야.



현아가 운다.

소호라는 남자는 갑자기 찾아와 현아의 첫사랑을 빼앗아갔다.

경찰에 신고도 해보았지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의 살인사건 수사따위는 해줄수 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현아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유한다.



현아가 운다.

감정은 남아있지만.

아직도 그 따스함이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건만.

모두들 없었다고만 한다.

존재자체도 없었다.

남자친구는 없었다.

사랑도 없었다.

그런데 아프다.

가슴 한켠이 너무나 아프다.



며칠이 지난 저녁.

현아가 집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소호가 다시 나타났다.

현아의 옆에 나란히 앉아 기분 나쁜 핏빛 눈동자로 현아를 들여다본다.



볼래?



뭘?



소호가 가방을 치켜든다.

꿈틀 거린다.



보고 싶어?

사랑했던 남자.



아니.



현아는 가로등에 모여드는 나방을 쳐다본다.



이미 잊었어.

첫사랑따위.



그래.

내이름은 소호.



알고있어.

전에 말했잖아.



소호는 가방을 내려놓는다.



현아.

이름이 현아 맞지?



응.



부탁이 있어.



싫어.



이 가방을 어떤 여자한테 전해줘.



싫어.



남자친구가 인간이 아니었던거 인정해.



싫어.



그럼 내 얘기를 들려줄게.



싫어.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난 요괴는 아니지만 요괴의 피가 내몸을 흘러.



그래서?

뭐?

어쩌라고?



부러워.

네가.



현아는 소호를 쳐다본다.

지금 이순간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부러워한다.

현아가 운다.



나.

진짜.

사랑했던거 맞지?



소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 울고 있는거 맞지?



소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첫 사랑이 끝나서 아파하는거 맞지?



소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 더 울어도 돼?



소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현아는 그렇게 공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소호가 현아를 다시 찾아 온것은 그로부터 얼마간 지난 어느 저녁이었다.

공원에서 홀로 줄넘기를 하고 있던 현아 앞에 나타난 소호가 가방을 내민다.



부탁이 있어.



현아는 줄넘기를 멈추고 벤치에 걸터앉아 땀을 닦는다.



부탁이 있어.



현아는 말없이 소호가 내민 가방을 받아든다.



요괴무덤에 살고 있는 여자한테 전해줘.

요괴무덤.

그곳이 어디쯤이냐 하면.



잠깐.

먼저 내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줘.



소호가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처음 나를 봤을때 운명이라고 느끼고 뒤를 쫓았다고 했지?



응.



그게 뭐야?

네가 말한 운명이라는 것.



소호는 붉게 빛나는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켰다.



남들이 볼수 없는것을 볼 수 있어.



어떤 것?

요괴 같은것?



응.



하지만 나는 요괴가 아니야.



그래 맞아.

너는 그냥 평범한 인간여자야.

내가 본것은 너의 전생이었어.



전생?



응.



내 전생은 뭐였는데?

그거랑 내 첫사랑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얘기하자면 길어.



시간은 많아.



소호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글쎄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네.

일단 내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려줄게.



3.기묘한 가족



무덤가를 등진 서양풍의 단독 주택.

소호내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무덤가 앞에 있다.

집 뒷편은 엄마의 공작실.

오늘도 소호의 엄마는 공중을 떠다니는 톱밥 먼지 속에서 관을 짜고 있다.

장례식 서비스 회사에 납품하는 엄마의 관은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가끔 소문을 듣고 개인적으로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을 소호는 보았다.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듯한 표정.

슬픔을 한덩이 껴안고 찾아온다.

소호의 엄마는 그런 사람들에게 물건을 판다.



아빠는 인도에서 잇(IT)이라는 일을 하고 있다.

누나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닌다.

아빠와 누나는 일년에 두 세번 소호를 만나러 온다.



소호는 일곱 살 유치원생이다.

내년에는 학교에 들어간다.

애꾸눈.

태어날때부터 왼쪽 눈을 뜨지 못했다.

애꾸눈이다보니 또래아이들보다 거리감각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운동신경 또한 둔하다.

소호는 친구가 없다.

괴롭히는 아이들조차도 없는 무관심의 존재.

소호에게 말을 거는것은 유치원 선생님뿐이다.

소호는 오늘도 그저 미끄럼틀 그늘에 쭈구리고 앉아있다.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엄마들이 몰려와 아이들을 데려간다.

소호는 아이 혼자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향한다.

시내를 벗어나, 양쪽으로 넓은 논밭이 펼쳐진 길을 걷는다.



시골길 한켠에 서있는 남자.

남자가 소호에게 말을건다.



눈 뜨고 싶지?



소호는 그저 멀뚱이 남자를 쳐다본다.



공양미 삼백석만 있으면 뜨게 해줄게.



소호는 그저 멀뚱이 남자를 쳐다본다.



농담이야.

이 아저씨가 약을 만들어 줄게.

대신 너희 엄마.

머리카락 한가닥이 필요해.



소호는 그저 멀뚱이 남자를 쳐다본다.



내일 여기서 기다릴게.



소호는 그저 멀뚱이 남자를 쳐다본다.



그날 저녁 소호는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고 자기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이 안온다.

소호는 감겨진 자신의 왼쪽 눈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본다.

소호는 침대에서 나와 엄마가 잠든 방으로 갔다.

유행이 한참 지나버린, 레이스가 달린 잠옷을 입고 엄마가 잠들어 있다.

소호는 엄마가 깨어나지않게 조심스레 다가가 엄마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어서 가서 자렴.

맞기전에.



응.



소호는 원하는것을 얻지 못하고 엄마의 방을 나왔다.

목욕탕.

소호는 목욕탕으로 갔다.

까치발을 하고 욕조안을 들여다보았다.

있다.

엄마의 기다란 머리카락.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길.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는 남자.

남자가 소호에게 말을건다.



가지고 왔니?



소호는 종이에 싼 엄마의 머리카락을 내민다.



소호는 눈 뜨고 싶어.

애꾸눈 싫어.

친구 갖고 싶어.

다같이.

다같이.

술래잡기 하고싶어.



남자는 소호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든다.



내일 이곳으로 오거라.



소호는 길에 서서 사라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소호가 나지막히 말했다.



꼭.



다음날.

소호는 유치원이 끝나자마자 남자를 찾아 시골길을 달렸다.

있다.

남자가 있다.



자 받거라.



소호가 손을 내민다.



대신.

나중에 아저씨가 너희 집에 놀러가도 될까?



소호가 머리를 크게 앞뒤로 흔든다.



여기 있다.

집에 도착하면 물에 개어서 마시도록 하거라.



소호는 남자가 내민 둥근 환약을 작은 손바닥으로 감아쥔다.



며칠 후에 놀러갈게.



그말을 남기고 남자가 사라졌다.

소호는 집을 향해 달려갔다.



소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약을 먹었다.

감겨있던 왼쪽 눈.

태어나서 한번도 뜨지 못했던 왼쪽 눈.

눈꺼플이 움직였다.

서서히 눈이 뜨인다.

평면으로 보이던 세상에 입체감이 생기며 소호에게 다가온다.

소호는 거울을 본다.



징그러.



마치 불꽃처럼.

붉은 눈동자.



징그러.



소호는 왼쪽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 주저앉아 울었다.



친구 없다.

술래잡기 없다.

또 혼자다.



어느샌가 저녁이 되어, 일을 마친 엄마가 돌아왔다.

목욕을 마친 엄마가 몸에 수건을 두르고 나오며 소호를 본다.



어디 아프니?



의기소침해 있는 소호를 걱정한다.

소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

소호는 살며시 안대를 젖히고 빨간빛을 내며 실눈을 뜨고본다.

헤어드라이기로 은빛 털을 말리고 있는 여우.

꼬리 끝이 아홉갈래로 갈라져있다.



소호야 내일은 거래처에 들렀다가 일 끝내고 데리러 갈테니 유치원에서 기다려.



응.



소호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혀로 겨우 대답한다.



좀 더 기뻐할줄 알았는데?



기뻐 엄마.



내일은 오랜만에 시내에 가서 외식이라도 하자.



응.



소호는 뭐 먹고싶니?



대답이 없다.

엄마는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소호의 방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소호는 창문을 열고 밖을 본다.

공동묘지.

안대를 떼어내고 눈을 뜬다.

차가워 보이는 파란색 불덩어리들이 무덤위를 너풀거린다.

눈이 세 개달린 도깨비가 버젖이 무덤위에 자리잡고 앉아 작은 고양이를 뜯어먹고있다.

눈알을 바닥에 흘린 노인이 눈알을 집어들어 눈구멍에 끼워넣고서는 좋아서 헤벌쩍.

처녀귀신이 썩은 고구마를 캐먹는다.

소호는 왼쪽 눈을 감고 다시 본다.

밤의 정막에 둘러싸인 고요하기 그지없는 죽은자들의 공간.

소호는 다시 붉은 빛을 뿜어내며 눈을 뜬다.

도깨비불이.

요괴들이.

귀신들이.

죽은자들이.



또다른 세상이 소호의 눈앞에 펼쳐진다.



다음날 유치원에 간 소호.

여느때보다 심각한 표정의 소호를 유치원 여교사가 조용한 방으로 끌고간다.



무슨 걱정있니?



망설임 끝에 소호가 입을 연다.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뜬것같아요.



흠짓 놀라는 선생님.



보기보다 상당히 조숙한 아이구나.

어디서?

컴퓨터?

비디오?



소호가 고개를 가로 젖는다.



집에서요.



맙소사.



저희 엄마가.



세상에나.

아이에게 그런 부끄러운 꼴을 보이다니.



저희 엄마는 사실.

엄마는 여우에요.



선생님이 살짝 얼굴을 붉힌다.



여자는 원래 다 여우란다.

선생님 애인도 선생님을 여우라고 부른단다.



점심이 조금 지나 소호의 엄마가 왔다.



소호야 가자.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단다.



소호의 손을 꼭 잡고 유치원을 나서는 엄마의 뒷통수에 들리는 한마디.



남편 출장간 사이에 어쩌면 그럴수가.



엄마가 뒤돌아보자 당황한 기색의 선생님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은 그날 저녁.

엄마는 거래처에서 급한 연락을 받고 집을 나갔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마라.



엄마는 소호에게 단단히 이르고 나갔다.

소호는 혼자 먹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소호야 나다.

눈병을 고쳐준 아저씨.



소호가 열어준 문으로 두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소호는 낯선 한명을 빤히 쳐다본다.



이사람은 내 친구란다.

걱정하지마.



소호가 빤히 쳐다본다.



어떠니?

친구는 많이 생겼니?



아니요.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모르지?

내이름은 견암.

깨달음을 찾아 해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쪽은 진남.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지.

엄마는?



늦게 오세요.

어쩌면 내일 아침 오세요.



그래.

혹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적이 있었니?



소호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니요.



따라 오거라.

이유를 가르쳐주마.



견암은 소호를 데리고 엄마의 침실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보거라.



소호는 보았다.

아빠와 누나가 옷장안에 걸려있다.

마치 바람빠진 풍선처럼 생긴 아빠와 누나가 옷장안에 걸려있다.



엄마가 인간이 아닌것은 알고있지?



응.



인간의 껍질을 입고 엄마행세를 하고 있었던거야.

한번에 한명씩밖에 변할수 없으니까.

당연히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인적이 없었던거야.



소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견암 아저씨는 왜 저를 도와주려고 하죠?



빨간 눈을 통해 본 세상은 맘에 들었니?



아니요.



그럼 그 눈을 내게 다오.

그러면 네가 그토록 원하는 황금박쥐 카드를 사주마.



싫어요.



소호는 뒤로 한발 물러섰다.



사실은 나쁜 아저씨였구나.



그렇지 않아.

너에게 그 눈은 필요없어.

내가 만일 그 눈을 가진다면 좀 더 빨리 깨달음을 얻을수 있어.

그럼 그후에 너에게도 세상의 깨달음을 가르쳐주마.



싫어요.



소호는 안대를 풀고 빨간 눈으로 두남자를 보았다.



불교의 수행자 복장인 견암이 강에서 잉어를 잡아먹고 있다.

보통 잉어가 아니다.

작은 강줄기를 지키는 강의 신이다.

잉어를 먹은자에게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강의 신이다.

견암은 그런 잉어의 살점을 게걸스럽게 뜯어먹는다.



소호는 진남을 보았다.



멋스러운 기와지붕이 있는 대궐같은 집에서 사는 선비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승냥이의 모습.

송곳니를 드러내고 적의를 잔뜩 드러낸 승냥이의 모습.



소호는 뒤로 또 한발짝 물러섰다.



싫어.

너희들 싫어.



견암이 작은 주머니 칼을 꺼내들고 한발 다가온다.



내놓아라.

진리를 볼수 있는 눈을.



싫어.



진남이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디선가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소호가 싫다잖아.

너희 두 녀석 당장 그만둬.



승냥이가 킁킁거린다.



어디냐?



승냥이로 변한 진남이 울부짖는다.



네놈 바로 뒤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 소호의 엄마도 강했다.

진남이라는 남자의 목을 물어 뜯었다.

승냥이의 목을 물어뜯었다.

소호는 본다.

승냥이의 목을 물어뜯는 거대한 은빛 구미호의 아름다운 자태.

견암은 구미호의 위용에 기가 눌려 헐레벌떡 집밖으로 도망친다.

소호의 엄마는 이미 숨이 끊어진 승냥이를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 치고 소호에게 다가갔다.

소호가 한발 물러선다.



소호야 이리와.



소호는 왼쪽 눈을 질끈 감고 엄마품으로 달려든다.

따뜻하다.

엄마품은 따뜻하다.

엄마는 소호를 안고 침대에 눕힌다.



그동안 속여서 미안하구나.



소호는 대답이 없다.



요 며칠 근방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길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역시 그놈들이었군.



엄마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소호의 손에 쥐어준다.



머리끈이란다.



난 머리 짧아.



소중한 거니 잘 보관해.



소중한것이면 엄마가 가지고 있어.



엄마가 고개를 젖는다.



엄마는 떠나야해.



소호의 검은 눈동자에 울컥 눈물이 고인다.



엄마는 곧 천년의 세월을 채우고 신선이 될꺼야.

그러면 엄마는 소호를 기억못할꺼야.



소호의 붉은 눈동자에도 울컥 눈물이 고인다.



이건 선물이야.

엄마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물건이라서 소호에게 주는거야.



소호의 두눈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릴듯 흘러내리지 않는다.



엄마 가지마.

인간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소호야.

냉동실에 얼려둔 고등어 배를 가르면 돈이 들어있을꺼야.



싫어.

가지마.



소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엄마 목에 매달렸다.



내일 아침 윤현이라는 법명의 스님이 너를 데리러 올꺼야.

그분을 따라가.



싫어.



결국 소호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만다.



헤어지기 싫어.

엄마랑 계속 같이 살거야.



엄마는 소호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너에게 애비없는 자식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엄마가 연극을 좀 했었단다.

사실 엄마는 결혼한적이 없는 처녀의 몸이란다.



상관없어.

엄마는 엄마야.

소호의 엄마는 하나뿐이야.



엄마는 소호를 침대에 눕혔다.



사랑한다 소호.

그립구나 적암.

부럽다 미친년.



엄마 무슨 소리하는거야?



엄마는 소호의 손을 꼭 쥐었다.



어서 자거라.

우리 아가.



싫어.



소호는 엄마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않기위해 두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손을 뻗어 엄마의 얼굴을 매만진다.

은빛 털이 한없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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