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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6 06:43
[유머] 1961도쿄의찌르기/야스시나가오
 글쓴이 : 선풍기
조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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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하비야 홀에서 다음 달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전 3다의 정치적 논쟁을 관람하기 위해 3천명이 모여 있었다.



마이니찌 신문사의 간부 사진기자인 야스시 나가오는 텔레비젼 카메라맨들과 다른 신문사 사진기자들과 취재를 하고 있었다.

연사 대기석에서 불과 15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나가오는 이미 필름 한 통을 다 찍어 버린 후 였다.



사회당 당수인 이네지로 아사누마가 연단에 나와 자유민주당과 미국과 일본간의 안보 협정을 헐뜯었다.

연설 시작 몇 분 후에 한 무리의 극우파 학생들이 야유를 보냈지만, 학생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설을 계속했다..



사진기자들은 소란의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나가오는 필름이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기다렸다.

이떼 유세상 반대쪽에서 갈색 막대기를 든 그림자가 연단으로 달려들었다.

아사누마가 달려드는 대학생에게로 돌아서자 그 학생은 긴 칼로 그의 복부를 깊이 찔렀다.

아사누마가 비틀거리며 연단에서 몇 걸음 물러서자 칼이 다시 그의 가슴을 찔렀다.

연단 바로 옆에 서있던 나가오 기자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필름으로 두 번째 습격의 칼날을 빼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바닥에 넘어진 아사누마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

1960년 10월 12일, 칼로 저지른 암살은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별로 오래되지 않은 과거 일본 봉건제도의 기념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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