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공신의 말로' 저 글의 댓글 중 하나입니다. 반박하는 글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글에 많이 동감합니다.
님....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었으면, 나라를 나누어서 말씀하시면 않되죠.... 어째서 촉나라의 군신관계는 모범적이서 촉나라의 신하들은 행복한 말년을 보냈고, 위나라의 공신들은 살아있는 것도 다행일 정도로 허망한 삻과 우울한 말로를 보냈다는 겁니까? 님의 글은 위나라의 모사들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았다고 하는 듯한데, 님이 말하는 그 좋지 않은 말년은 단지 개인적인 삶과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일 뿐이지 국가 전체가 그래서 그런것은 절대 아닙니다.
유엽과 유비의 차이를 말씀하시는데, 유엽과 유비의 차이는 그릇의 차이입니다. 유엽이 제 아무리 지략의 대가이고, 병법이 유비의 100배를 앞선다해도, 유비의 그릇과 유엽의 그릇은 다른 것입니다. 유비는 군웅의 그릇이고, 유엽은 모사의 그릇이기 때문이죠.... 그럼, 유비나 손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탁월한 전략가인 제갈량이나 순욱이 나라를 세웠거나, 전술과 권모에서 공명이나 문약이 따라올 수도 없는 방통이나 곽가, 가후가 나라를 세웠으면, 천하의 한부분을 차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조운과 관우의 비교와 같은 것입니다. 조운같은 장수를 관우나 하후연등에 비교하는 그런 오류라는 것입니다. 둘다 한왕실에 반기를 들었다니... 유비는 한왕실에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운 군웅이고, 유엽은 그런 군웅들이 세운 나라를 섬기는 신하일 뿐입니다. 어찌, 그런 분류를 해서 비교를 하시는지.... 그건 님이 같지도 않은 것을 같이 분류하여, 상이한 공신들의 말년을 나라 전체별로 묶어서 결국 그들의 말년까지도 같이 묶여져 분류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유엽은 겉으로만 근엄하고, 자신의 머리만 믿고 간교하여 스스로가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유엽이 위나라에 있었기에 좋지 못한 말로를 보낸 것이 아니라, 개인 성격의 문제고 삶의 방식의 문제입니다. 유엽이 조조가 능력 중시를 했기에 그정도의 권세를 누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조조대에 세운 공으로 조비대에까지 미쳤으니깐요...의리나 인정등에 쏠리는 다른 군웅을 섬겼다면, 유씨라는 이유로, 아니면, 젊은 시절 그의 행동등으로, 유엽은 아예 이름을 내지도 못했을지도 모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유엽은 그따위 성격으로도 위나라로 갔기에 그 정도의 권세를 누렸다면, 더욱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님은 개인적인 삶을 왜 국가로 나누에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후 역시 그렇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가후가 오랑캐라는 이유때문에 자중한것이 아니고, 스스로 한짓거리가 있기때문에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 자중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누가 오랑캐 때문에 스스로 자중했다고 하던지요? 하여튼, 가후는 자중하며 살았기에 주인을 그렇게 바꾸고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엄청난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천수를 누렸는데, 뭐가 억울하다는 겁니까?
그리고 가후는 촉으로 갔던 오로 갔던, 그는 자기가 해온 짓거리가 있기에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 어느 나라에 갔어도 자중하면서 살아가는 처세술로 살아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가후는 능력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조조를 만났기에 더욱 휘황찬란하게 권세를 누리다 죽었으니 그것은 오히려 복된 것입니다. 다른 인물에게 몸을 맡겼다면, 이미 의심을 받아 더 암울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조조는 뭐든간에 단지 능력만 중시했기에 가후는, 자기가 한 짓에 비해서, 능력을 최대한 살리고 엄청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삼공에 올라서 천수를 다 누린 사람이 뭐가 불우하다는 겁니까? 오히려 조조에게 투항했기에 더욱 공을 세우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정말 다른 선택에 비해서 최선의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가후의 말년이 결코 불우하다거나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님께서 잠깐 말씀하신 서황도 투항한 장수라 스스로 자중하며 가후처럼 다른 장수들과 교류도 잘하지 않으면서 근엄하게 살았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정욱같은 경우엔 조조에게 인정을 받고 삼공에 오를 즈음하여 스스로 물러났죠. 만약 그가 삼공에 까지 올랐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괜히 허울뿐인 관직에 올라, 가후처럼 비웃음을 당했을 겁니다. 정욱같은 인품을 가진 이가 삼공에 올랐다는 그런 비웃음을 받았겠죠. 아니면, 모질고, 타협심없는 그라 여러 탄핵을 받거나 그러했겠죠.
하지만, 정욱은 모질고 냉정하고 타협심이 없었지만, 가후처럼 간교하지는 않았고, 사나이다웠죠. 그는 조조에게만 충성을 다했기에 그렇게 주군을 위해 잔인한 계책이나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단지 충성을 다한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조조에 대한 충성으로 조조에게 인정을 충분히 받았으며, 조조가 삼공의 자리를 줄만한 말을 할 즈음에 명예롭게 퇴직했습니다.
정욱이 조조에게 바친 공에 비해 삼공정도의 지위를 받지 못했으니 불우했다? 그는 스스로가 관직을 꺼리고 물러난 사람인데, 그런 사람한테 관직이 왜 중요합니까? 하물며, 삼공의 자리를 받을만큼 공을 세웠다는 것을 조조에게 인정까지 받았는데, 관직이 뭐가 중요합니까? 당시 정욱의 나이를 보면 퇴직할 나이도 되었었는데, 당연한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이황같은 인물은, 조선시대에 중용되다가, 나이가 들어 스스로 관직을 떠나 영남으로 내려와 학문을 가르쳤는데, 그럼, 그도 불우한 사람입니까?
정욱은 순욱이나 제갈량처럼 침착하고 중후한 그런 충성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심배와 같은 충성이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강직했고 충성심이 뛰어났던 것입니다. 정욱같이 비난을 받던 인물이 마지막엔 그의 성격에 맞는 사나이다운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이제껏 정욱의 나쁜 평판을 덮어줄 진정한 정욱의 성격에 걸맞게 멋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뭐가 불우합니까?
그는 끝을 알고 스스로가 물러나는, 진짜 사나이였고, 가후처럼 마지막까지 권세를 누리다가 뒤에서 비웃음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퇴직하여, 정계에서 물러난 것은 외부의 압력이나, 생명의 위협때문에 조용히 살려고 물러난 것도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비난 받을 관직에 오르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조조가 정욱에게 삼공을 시킬 마음을 보였다는 것은 주군에게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는 스스로 그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퇴직했죠. 정욱은 끝을 알고 스스로 물러난 인물입니다. 그의 퇴직이 생명의 위협을 당해 이루어 진것도 아니고, 스스로도 행복해했을겁니다.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산것이 허망한 죽음으로, 불우한 말년입니까? 도대체 뭐가 암울하다는 겁니까?
오히려 공에 합당한 관직을 받지 못한 것으로 따진다면, 정욱이 아니라, 오나라의 장소같은 인물이 불우하다 할 수는 있겠죠. 장소는 손권이 왕을 칭하자 관직을 버리고 떠났는데, 장소는 오나라 정치의 중심이었던 인물이었지만, 삼공에 오르지 못했으니, 오히려 그가 불우했다고는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장소역시도 손권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인물로, 장소 말년에 손권에게 실망하여 관직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손권은 끝까지 그를 불러내려고 하였는걸로 보면 그리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하여튼, 유엽같은 인물은 솔직히 교활하지만 능력은 출중한데, 끝까지 권세를 누리지 못하였으니, 약간은 암울한 말로를 보내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욱이나, 가후같은 경우는 결코 암울한 말로라든가, 비운의 모사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스스로가 추구하던 개인의 이상적 삶을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가후가 추구하는 권세와 부귀, 정욱이 추구하는 충절과 명예...
두 사람 모두 스스로가 원하는 행복한 말로를 보냈습니다. 둘 모두 스스로 추구하던 삶을 누렸습니다. 결코 비운의 말로를 보낸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말로를 보냈죠. 그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거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이상이 파괴되기라도 했습니까?
가후 말년에, 조비가 조홍에게 했듯이 가후의 재산을 몰수하고 옥에 가두면서 파직이라도 했습니까? 아니죠... 주인을 여러번 바꾸고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주인을 만나 자중하는 처세술로 자기가 추구하는 권세와 부를 맘껏 누리다가 죽었습니다.
정욱은 어떻습니까? 정욱이 낙향하자, 조조가 그를 다시 조정에 불러들이려고 사마의에게 했듯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했습니까? 아니죠...조조는 그의 공과 충성을 인정하여 편한히 살게 나두었습니다. 그들은 죽을때까지 스스로가 원하던 삶을 살았는데, 왜 비운의 모사입니까?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위나라의 모든 공신들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순욱에게만 사용되는 말이죠.... 정욱이나 가후는 원하는 대로 천수를 누렸는데, 무엇이 토사구팽이고, 암울한 말년입니까?
그런데, 님께서는 촉의 인재들이 어째서 좋은 말로를 보냈다는 겁니까? 유비에 이어, 유선에 이은 2대에 걸쳐 제갈량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한 것 때문입니까? 유선이 제갈량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한것은 그만큼 촉에 인재가 없었다는 것이고, 뛰어난 인재가 적었기에 제갈량에겐 정적이 없었던 것이죠.
위나라의 사마의의 경우와 달랐기 때문이죠. 사마의는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인물이지만, 위의 궁중에는 뛰어난 인재들과, 한 인물할 외척들이 즐비했기에, 탄핵을 받기도 하죠. 하지만, 제갈량은 촉에 그럴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유선의 무능함도 한몫했죠.
하지만, 제갈량이 행복한 말로를 보냈습니까? 인재가 없고, 국력의 차이로 허덕이며, 과로사했습니다. 장완이나 비위같은 인물도 촉나라 안에서만 인재이지, 위나라에 있었으면, 그리 이름을 떨칠 인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갈량이 내정과 외정 어떤면에서도 남에게 전폭적으로 맡기지 못하고, 모든걸 스스로 도맡아 한 것을 보면 그렇죠. 이런 인재난에 허덕이다 과로사한 인물이 행복한 말로를 보낸 것입니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국력의 차이와인재난에 허덕이고도, 악전고투하여 그의 뜻대로 중국을 통일했습니까? 그는 그렇게 여러차례 북벌을 감행하지만, 장안성조차도 한번 점령하지 못합니다. 그가 어떤면에서는 정욱이나 가후같은 인물과는 차원이 다르게 비극적인 모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인재난에 허덕이다가 과로사하고,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전장에서 죽은 제갈량이 과연 행복한 말로를 보냈습니까? 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으로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죠... 비운의 말년이죠....
하지만,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으니까?
개인의 삶으로만 제가 말씀드려볼까요? 그럼, 정욱은 어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제갈량은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지만, 인재난에 허덕이다 과로사하여 전장에서 사망하죠. 하지만, 정욱은, 조조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편안히 집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가후역시 그의 교묘함으로 조조에 이어 조비에 걸쳐서 투항한 장수임에도 2대에 걸쳐 엄청난 권세와 부귀를 누리다 편히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더 비운의 모사인지?
촉의 마량은 어떻습니까? 연의에서 보면, 이릉전투중에 난군중에 죽었습니다.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뛰어난 인물이 괜히 주인의 잘못된 전쟁에 참가하여, 전쟁에서 공도 세워보지 못하고 주인때문에 전장에서 이름도 모를 무명졸병에게 비명횡사했는데, 마량은 행복합니까?
주군의 신임으로만 따지다면, 삼국의 정치가나 모사들은 대부분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인과 뜻이 달라서 죽어야만 했던 순욱이나, 그리고 순욱처럼, 주군에 대한 충성이라기 보다 백성을 위한 유학자이기에 주군과 뜻이 달라 관직을 버렸던 장소. 그리고, 주인을 잘못 섬긴 것은 아니나 정치의 희생물이 되야했던 육손같은 인물처럼 마지막이 불행했던 인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조조에게 중용되었던 공신들은 순욱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러하거니와, 그나마, 유비나 손권도 원소와 같은 자부심은 없었기에, 스스로를 낮출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수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살았습니다. 원소같은 경우는 손권과 유비와는 달리 자부심이 워낙 강하여, 참모들의 의견을 듣기는 좋아하지만, 결국 자기의 뜻을 관철시켰으니, 심배와 같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 심배외의 뛰어난 모사인 전풍이나 저수는 불우했었던거죠. 하지만, 유비나 손권의 수하들은 대부분 인정 받고 능력을 폈습니다. 결코 불우하지 않았습니다.
또, 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공에 맞는 합당한 부귀영화를 못누렸기에 말로가 불행하다면, 유엽은 그렇다고 쳐도, 정욱과 가후는 예외가 되어야지요... 그렇다면 위나라에는 유엽밖에 불우한 인물이 없군요...
그리고, 악행을 저질러도, 공을 세우고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위나라에는 법정과 같이 살다가 죽은 사람들은 남아 돕니다. 연의에서는 평가 절하되었지만, 동소같은 이들도 있죠. 동소도 능력과 공에서는 유엽못지 않아, 정사에서는 유엽보다 열전이 앞에 위치하고(오래 살아서 그러하겠지만...), 곽가, 정욱, 유엽등과 함께 분류되어, 그들의 계책을 거의 동급에 보고 있죠. 순욱과 순유같은 인품이 없는 것도 모두 동일하여 한 부류에 묶여 있는 인물이죠... 그는 공신의 반열에 드는 인물인데, 조예대에까지 살아 삼공에 올라 천수를 누리고 3대에 걸쳐 부귀와 영화를 누렸죠. 그외에도 조조의 거병초기부터 동향사람인 정위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법정과 유엽같이 전술가들의 측면만을 놓고 본다면, 끝까지 신임을 받았으니, 법정이 유엽보다 행복하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면 법정과 유엽은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죠. 법정은 끝까지 신임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였고, 마음도 그리 가졌지만, 유엽은 끝까지 신임받지 못할 행동을 하였으니, 유엽은 스스로가 화를 자초한것입니다.
법정은 주군을 팔아먹은 인간의 질적으로는 가후보다 더 더러운 인물이죠. 재능의 면에서도 가후보단 한참은 쳐지지만 말이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유비에게 붙었다는 이유로, 연의에서는 좋게 그려지고 있는 인물이죠.
그가 좋게 그려지고 있지만, 잘생각해보면, 삼국지 연의에서조차 장송이나 법정같이 주군의 신임을 이용하여 주군을 철저히 팔아먹은 더러운 놈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해도, 양송이나, 진등정도... 하지만, 양송등과는 비교도 않될 정도로 재능을 가진 인물이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법정과 장송이라는 두 명 뿐입니다. 게다가 무능하지만, 순진한 주군의 철저한 신임이라는, 극한에 몰린 인간의 두려움과 자신들에 대한 신임이라는 순수성을 이용해서, 철저히 사람을 짓밟은 인물은 장송과 법정밖에 없죠. 왕루같은 충신들보다도 더 자신들을 믿게하여, 그렇게 자신을 믿은 사람의 신임을 빙자하여 그것을 팔아먹는 그정도로 추악한 인물은 이 두명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순진성을 끝까지 파고들어 악행을 저지르는... 이런점은 미방과 부사인, 범강과 장달등과 비교해보아도 더욱 잔인한 짓입니다. 미방등은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것도 아니고, 보복이라는 어느정도의 동정의 여지는 있지만, 법정과 장송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철저하게 추악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유비에게 붙었다는 이유로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죠...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은, 그런 법정은 주인을 팔아먹었지만, 주인을 팔은 후에는 진정한 주군을 만났듯이 유비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개인적인 과거에 대한 복수를 하고, 사람들을 모질게 대하지만, 유비에 대한 충성에는 거짓이 없었죠. 그래서 제갈량도 법정이 있었으면... 이라는, 말을 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건 법정의 능력을 아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늦게 시작했지만, 법정의 유비에 대한 충성과 과단성이 아쉬었다는 이야기었겠죠. 그래서, 그렇게 철저하게 추악한 인물이지만, 연의에서 점수를 딴 이유죠... 정욱이나, 심배, 곽가 같은 방식으로 살았던 사람이죠. 뭐, 물론, 법정은 정욱이나, 심배같은 인물의 성품에는 결코 따라오지도 못하는 추잡한 인물이지만, 하여튼, 주인을 바꾼 후에는 충심을 다했기에 개인적인 결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의에서는 그나마 미방이나 부사인보다 좋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법정같은 인물은 유엽의 기지와 판단력에 따라오지 못하겠지만, 유엽과 법정은 모두 과단성이 있던 인물이었죠.
하지만, 유엽은 법정과 달리, 하지만, 첨부터 끝까지 충성이 아니라, 재능으로 먹고 살은 인물입니다. 마지막엔 충성을 다한 법정과는 달리, 유엽은 조조를 섬길때부터 조조를 모시고자하는 충심이 아니었죠. 다른 글에 보니 유엽이 조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으로 위나라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하는데 말도 않되는 것입니다. 유엽은 조조와 첫 대면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기지를 발휘하여, 장제같은 인물들 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게 된것에서 알수 있듯이, 그는 교활하게 첨부터 끝까지 기지를 발휘해서 먹고 살아온, 위나라나 조조에 대한 충성심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유엽은 유비와 달리 완전한 족보가 있는 유씨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근엄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후가 스스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자중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유엽이 양수같은 인물처럼 경박하지도 않았던 것은 그만큼 스스로를 컨트롤 할 줄 아는,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내심은 그게 아니었기에 많은 중신들이 그가 충성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계속해서 그를 탄핵했고, 겉은 근엄하지만, 속내는 교활하다고 주변에서 꺼리는 인물들도 있었기에, 결국은 신임을 잃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충성심과는 거리가 먼, 능력이로만 먹고 살아왔던 인물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법정은 끝까지 좋은 말년을 보냈고, 유엽은 신임을 잃고 나중에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즉, 법정과 유엽 둘모두, 비록 법정이 유엽의 기지와 정세판단능력에 따라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전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같지만, 그들의 삶과 행동방식이 달랐죠... 법정은 추악해도 마지막엔 충성을 다하였으니,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고, 유엽은 자신의 능력으로만 먹고 살았고, 충성이 없었으니, 스스로가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엽과 법정의 비교되는 결말은 결코 위나라나 촉나라의 신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더더욱 개인 삶의 방식 차이라는 것입니다.
공을 세우고 합당한 부귀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나, 악하여도 천수를 누리고 부귀를 누렸다는 것은 나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의 차이입니다.
마지막으로, 충심으로 주군을 모시고 뛰어난 능력으로 보필하려고 하지만, 주군이 그의 계책을 빈번히 물리쳐 신임을 받지 못했다면? 그렇다면 비운의 모사가 맞죠. 하지만, 애썩하게도 위의 공신들 중에는 그런 인물이 거의 없습니다. 순욱이나 순유, 그리고 정욱, 곽가의 의견은 대부분 조조에게 채택되고 조조는 그들을 중용하죠...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유비쪽에서 의리와 인정을 내세워 좋은 전략들을 빈번히 물리쳤죠.... 그럼, 누가 더 불우한지? 유엽이나 가후는 충심이 없었으니,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가후나 유엽의 계책은 대부분 받아들여지고, 혹, 그들의 계책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때도 있었으나, 조조나 조비는 모두 나중에 후회를 하고 그들을 중용하죠...
공을 세우고 합당한 부귀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나, 악하여도 천수를 누리고 부귀를 누렸다는 것, 그외에 다른 것 역시, 개인적인 측면이지 나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촉나라 인물들은 행복한 말년을 누렸고, 위나라 공신들은 불우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량이나 제갈량같은 인물은 천수를 누렸습니까?
나라로 분류를 한다면, 주군을 잘못만나 뜻을 펴지 못한 장수들에 대해서 말을 하셔야합니다. 전풍이나, 저수같은 인물들 말입니다. 천수를 누리지 못했거나, 합당한 관직을 받지 못한 것은 주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라별로 분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굳이 나라별로 분류하자면, 원가의 전풍, 저수나, 후에 삼국 정립단계에서 죽기 전까지도 조조군의 중핵으로 중용되었으나, 조조와 뜻이 달라, 죽음을 맞이하는 순욱이나 순욱처럼 손권에게 중용되었으나, 정치적 희생물로 죽은 육손같은 인물이 비운의 인물들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 주군에게 버림을 받았으니깐 말이죠... 하지만, 나라로 분류한다면 이 인물들에게만 국한된 것입니다. 님의 말씀처럼 위나라의 모사들의 말로는 대부분 불우했고, 촉은 대부분 주군의 신임으로 말로가 좋았다... 이런 식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차이일뿐....
마지막으로 주인을 잘못모셨던 비운의 인물들을 열거해보면,
조조를 섬겼으나 뜻이 달라서 죽음을 맞이하는 최염과 순욱, 그리고 비운까지는 아니지만, 공적과 충성에 비해 억울한 조홍과 모개나 그외에 조식정도..... 그리고 전위... 주인을 잘못 섬겼다기 보다, 어쩌다 저런 호색한때문에....-,.- 하여튼, 이중에서도 가장 비운의 인물은 조홍정도밖에 없군요... 조비의 좁은 맘때문에....
그리고, 원소를 섬긴 전풍, 저수같은 인물은 정말 비운의 모사들이죠... 순욱은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순욱이 죽기 전까지도 조조는 순욱을 중용했었고, 죽은 후에도 순욱을 아쉬워하기도 했으니, 뜻이 달라 죽은 것 외에는 전풍, 저수에 비하면 행복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유장을 섬긴 왕루정도.... 그 외에는 주인을 잘못 섬긴 딱히 없는 것 같네요... 진궁조차도 전풍, 저수와는 달리 여포의 신임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육손은 주인을 잘못 섬겼다기 보다는, 정치적 희생이 된것 뿐이니깐... 그외에는 바로 생각나는 것은 없군요..
으아.... 엄청 써버렸군....
하여튼, 님의 분류는 억측이 심하군요.... 촉의 신하들은 행복하고 모범적인 말년을 보냈고, 위의 공신들은 살아있는 것 조차 감사해야 할 정도로 불우했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가?
저는 SEIJI님의 글에 반박하려는 의도로 글은 쓴것이 아니라 공신들의 말로에 대해 또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려고 쓴 글이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