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이 바로 홍콩입니다.’ 중국 최남단 주하이 경제특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자신을 이곳까지 안내한 장더장(張德江) 중국 광둥성 당서기가 가리키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다 건너 그곳에는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인 홍콩의 고층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 차 있었다.
지난 1월10일부터 18일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8박9일에 이르는 중국 남부 도시 대장정의 클라이막스 장면이다.주하이에서 바라본 홍콩. 이것은 바로 김위원장 스스로 밝혔듯이,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자, 그 스스로도 와서 확인하고 싶었던 현장이기도 하다.
북·중 양국의 최고 지도부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8박9일의 베일에 싸인 여정이 끝나면서, 그 껍질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그의 이번 순방은 단순한 경제 학습이 아니었던 것이다.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그의 이번 여행은 장쩌민·후진타오 등 중국 최고 지도부와의 대를 이은 신경전에 종지부를 찍는 획기적 여행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이 소식통에 의하면, 김위원장과 중국 최고지도부는 그동안 북한 경제 회생의 방향과 방법을 둘러싸고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여왔다.‘자력 개발’ 입장을 고수해온 김정일 위원장과 중국의 위탁개발을 받아들이라는 중국 지도부의 압력이 팽팽히 맞서왔다는 것이다.
양측 최고 지도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 곳이 바로 신의주였다.“신의주는 지난 2002년 양빈 사건 이래 양측 최고 지도부의 입장이 맞서온 대표적인 지역이다.이런 점에서 김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번 여행길에 나섰다는 것은 곧, 신의주를 중국에 맡기라는 중국 지도부의 제횬?김위원장이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식통의 말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그의 남행길을 일컬어 ‘제2의 남순강화’니, ‘개혁 개방 현장 시찰’ 운운했던 국내외의 평가들은 매우 한가한 얘기들이었던 것이다.
그의 여행이 가지고 있는 폭발력에 대해 이미 해외의 정보통들은 감을 잡고 있었다.<시사저널>과 통화한 워싱턴의 한반도 소식통은 “신의주 개발에 대한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이번 여행의 핵심이다”라고 확인했다.그는 김위원장 방중 행보 직후부터 워싱턴 당국은 크게 두 갈래 방향으로 방중 목적을 추적해왔다고 밝혔다.하나는 북·중 양국간 숨겨진 대형 프로젝트의 가능성이다.바로 지난 연말의 유전공동 개발 합의에 따른 후속 협의를 의미한다.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중국이 북한의 특구 개발에 경험과 자본과 기술과 심지어 특허까지 이전하는 전폭적인 협력 프로그램의 가동”인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신의주 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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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7일 김정일 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과 함께 농업과학원 작물과학연구소를 방문했다
중국 동북 지방의 대북 전문가는 그의 이번 방문이 신의주 위탁 개발과 관련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단언했다.이미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해 10월 말 평양을 방문했을 때, 양측 실무진 사이에서 조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그는 “당시 중국의 대북 지원 항목에 경의선 복선화 및 현대화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라면서 “신의주 개발은 그것과 연동해 중국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평양이 중국 사정권에 들어갈 듯
신의주 위탁 개발은 한마디로 북한이 그동안의 자력 개발 노력을 포기하고 중국에게 개발권을 넘긴다는 것을 뜻한다.북한이나 중국 모두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가지고 있다.따라서 이는 소유권이전이 아니라 사용권을 넘기는 점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의미의 ‘조차 개발’과는 다를 수 있다.좋은 말로 ‘공동 개발’ 또는 ‘대리 개발’ 같은 개념일 수 있다.그러나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토지 사용 기간이 짧게는 20년에서 50년, 길게는 80년까지 간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신의주가 중국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뜻한다.또한 평양과 중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의 90% 이상이 신의주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곧 평양이 중국 사정권 안에 들어가는 ‘대전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번 여행을 이런 충격적 사건과 결부할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대북 정보 소식통은 지난 2001년 김위원장의 상하이 방문과 이번 여행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상하이는 중국이 홍콩 자본을 빌려 선전을 개발한 뒤, 거기서 축적된 힘을 통해 자력으로 개발한 곳이다.즉 그때만 해도 김위원장은 북한 특구에 대한 자력 개발 의지로 충만해 있었고, 그 다음해 양빈을 앞세워 신의주 특구 개발을 시도했다.그러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로 중국 지도부가 양빈을 탈세 혐의로 전격 구속함으로써 신의주 특구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바로 그 전 해인 2001년 김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당시에 이미 장쩌민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자력으로 신의주를 개발하겠다는 김위원장의 구상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하이를 돌아보고 베이징에 올라온 김정일 위원장이 장쩌민 주석에게 중국이 북한의 경제 재건을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이에 대해 장쩌민 주석은 “북한이 중국식 개발을 택한다면 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대꾸했다.장주석의 속내는 곧 주룽지 총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즉 그는 “북한이 중국과 접하고 있는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개발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면서 “차라리 남한과 접하고 있는 개성을 특구로 개발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라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이미 양빈 구속 전에 중국은 신의주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자력 개발 입장에 반대를 천명한 것이다.
왜 중국 지도부는 신의주에 민감할까. 신의주는 지난 1906년 일제가 경의선과 남만주 철도를 앞세워 만주 일대를 공략할 때 만들어진 군사 도시였다.다시 말해 중국 입장에서는 대륙 진출의 관문인 것이다.따라서 중국은 ‘자신들이 개입하거나 주도하지 않은 신의주 개발’에 대해 한마디로 불안하다는 입장이다.즉 그 배후에 어떤 세력이 들어올지 알 수 없고, 미국이나 일본같이 자신들이 원치 않는 세력이 이곳에 들어올 경우 동북 3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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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와 단둥을 연결하는 ‘조-중 친선 다리’. 신의주가 중국에 의해 위탁 개발되면 단둥은 홍콩과 같은 배후 도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 지도부의 반대로 신의주에 대한 자력 개발 구상이 표류한 지 3년이 지난 후 또다시 김위원장이 중국 방문에 나섰다.그렇다면 이번 남행길은 2001년의 상하이 방문과 어떤 차이가 있나. 국내외 언론은 김위원장의 이번 남행길을 1992년 등소평의 남순강화 행로와 비교해 분석했다.주요 도시를 살펴보면 분명 겹치는 점이 있었고, 또 일견 그렇게 보이도록 기획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그러나 이번 방문은 그보다 더 훨씬 뚜렷한 목적성을 그 안에 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단적인 예가 바로 등소평의 남순강화의 마지막 종착점이었던 상하이 방문이 이번에는 빠졌고, 주로 광둥성의 광저우-주하이-선전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광저우-주하이-선전 루트는 바로 중국이 홍콩 자본을 끌어들여 위탁 개발했던 초기 경제특구의 확대 발전 과정을 역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즉 홍콩의 화교 자본이 맨 처음 선전을 개발하고, 선전이 개발됨에 따라 그 주변지역인 주하이 특구가 개발되었으며, 이것이 광둥성 전체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그 성도인 광저우의 번영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자력 개발의 모델이었던 상하이와 정반대의, 외부 자본 유입에 의한 위탁 개발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대조선 전략’ 계획대로 진행돼
중요한 것은 이 루트를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번 방북 때 권유했고, 김위원장 스스로 자신이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는 점이다.양국 지도부가 마찰을 시작했던 지난 2001년 상하이 방문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후주석이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인 선전 개발은 바로 홍콩이라는 무궁무진한 외자 공급 루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그리고 그 홍콩 개발은 당시의 중국 지도부가 굴욕을 참고 영국에게 100년간 조차 개발하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리고 결국은 돌려받았을 뿐 아니라 그 덕분에 중국 경제 개발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메시지인 것이다.정보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이는 곧 신의주를 중국이 위탁 개발하더라도, 중국에 의한 영토 장악 보다는 궁극적으로 북한 개발의 불꽃을 점화하는 순기능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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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때인 1월14일 광저우 국제공항에서 발견된 북한 고려항공 여객기
그는 이와 함께 “선전-주하이-광저우라는 광둥성 모델은 결국 신의주-평양권 개발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선전의 배후에 홍콩이 있었듯이, 신의주의 배후에는 단둥이 있다.즉 신의주를 단둥과 연계 개발하고, 궁극적으로는 남포를 포함한 평양까지 확장되는 코스라는 것이다. 평양은 바로 광저우와 오버랩되고, 여기에 광저우 방문의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력 개발 노선을 접고, 여기까지 오기에는 실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2002년 양빈의 구상이 물거품이 된 후, 그는 자력 개발의 어려움을 실감했다.추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신의주 개발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고, 중국이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해졌다.그렇다고 남한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막막했다.
김정일, 원로들의 반발 잠재우려고 방중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에게 맡기라는 중국 지도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버티었다.최소한 2004년 말까지 그의 입장은 완고했다.“그 이전에 신의주 개발을 위해서는 중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안을 올린 사람들한테는 여지없이 불벼락이 떨어졌다”라고 북한 소식통은 말했다.‘자신의 연대에 자기 땅을 대리 개발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김위원장의 확고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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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원장이 묵었던 광저우 바이톈허 호텔.
그러나 2004년 말부터 김위원장의 마음이 움직이는 조짐이 나타났다.북·중 양국 관계에서 2004년 12월경은 대단히 중대한 시기였다. 우리 정부나 언론 정보기관을 막론하고, 국내에서는 바로 이 시기에 대한 정보가 없는 듯하다.거의 ‘블랭크(공란)’ 수준이다.당시 국내 언론에는 “중국이 핵문제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는 식의 희망 섞인 보도만이 횡행할 때였다.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중국이 북을 압박하기는커녕, 당시 중국 공산당 산하 연구소들은 북한을 중국의 동북 3성과 한데 묶어 개발하기 위한 ‘5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입안하고 있었다.(쪽 기사 참조) 정보 소식통들은 이에대해 “중국의 ‘대조선 전략’의 기본 방침이 이때 확고하게 결정되었다”라고 지적한다.
대조선 전략의 핵심 슬로건은 바로 양국의 ‘경제 노선의 일치’였다.즉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에 입각해 북한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해 10월 방북 때 장황하게 한 연설의 구상이 바로 이때 만들어졌다.50억 달러는 바로 그것을 위해 필요한 최소 경비였던 셈이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한계를 절감하던 김위원장으로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중국이 제안한 ‘동북 개발과 조선의 연계개발 전략’에 따른 신의주의 위탁 개발 또는 공동 개발 제의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2005년 1년의 세월이 흐른 것은 “김위원장은 결심했는지 모르나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지난 1년간 북한 내부는 사실상 그 준비 작업을 진행해왔다.신의주 주민에 대한 성분 조사와 교체를 마무리하고, 중국식 시장경제 체제 도입이 가능하도록 경제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등의 제도적 개편이 뒤따랐다.
마지막까지 문제는 바로 원로그룹의 반대를 잠재우는 것이었다.중국에 의한 속국화를 우려하는 원로들의 반발 때문에 북한 권력 내부는 지난 1년간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고 한다.그리고 이번 남행길은 바로 그 논쟁의 와중에 전격 단행되었다. 김위원장이 원로들에게 바로 그 현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이는 곧 그들 역시 ‘현실’ 수용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결국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이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한반도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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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왕조....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