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티라는 한 위대한 왕이 있었다. 그의 나이가 어느덧 백 살이 되었을 때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을 살 만큼 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것이다.
어느 날 죽음의 신이 아야티를 찾아와서 말했다.
"이제 그대는 떠날 때가 되었다. 준비를 하라. 나는 그대를 데리러 왔다."
아야티는 이윽고 사신(死神)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위대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야티는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너무 일찍 오셨습니다!"
사신이 말했다.
"내가 일찍 왔단 말인가? 그대는 백 년 동안이나 살았다. 이제 그대의 자식들마저 늙은이가 다 되었다. 그대의 장남이 지금 여든 살이다. 그런데도 무엇을 더 바란다는 말인가?"
아야티는 백여 명의 아내와 백여 명의 자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다시 사신에게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위하여 그 부탁을 꼭 들어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누군가를 데려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나를 대신하여 내 자식들 중의 한 사람이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그를 데려가시고 저를 백 년만 더 살게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러자 사신이 말했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 죽겠다고 한다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미 살 만큼 살았고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누려본 그대마저도 죽지 않으려 하는데 그대의 자식들이 죽음을 원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야티는 그 즉시 그의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그가 이야기를 하자 나이 든 자식들은 한결같이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만이 방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 이제 겨우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가장 어린 막내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그러자 아야티를 데리러 온 사신조차도 그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던지 그에게 말했다.
"너야말로 너무나 순진한 소년이구나. 아흔아홉 명이나 되는 너의 형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지 않느냐. 그들은 여든 살이나 되었고 혹은 일흔다섯 살이나 되었으며 또 일흔 살이 된 사람도 있고 예순다섯 살이 된 사람도 있다. 그들이야말로 살 만큼 살았는데도 여전히 더 살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너는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 그런 너를 데려간다는 것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다.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해봐라."
어린 소년이 말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더욱 확실하게 결심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고 가는 것입니다. 백 살을 사신 아버지도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나 역시 더 살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슨 만족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아흔아홉 명이나 되는 나의 형들도 삶에 대하여 아무런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 헛되게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적어도 나는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충분히 사셨지만 앞으로 백 년을 더 살게 해주십시오. 나는 이제 끝났습니다. 어느 누구도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백 살을 산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죽거나 구십 년 뒤에 죽거나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그래서 사신은 그 어린 막내아들을 데려갔다. 그리고 백 년 뒤에 사신은 다시 아야티를 찾아왔다. 아야티는 아직도 그 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이렇게 말했다.
"백 년은 너무 짧습니다. 저의 늙은 아들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아직도 많은 아들들이 있습니다. 다른 아들을 드릴 테니 나에게 한번만 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아야티는 다시 백 년을 더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하여 그는 천 년을 더 살 수 있었다. 마침내 죽음의 신이 열번째 그를 찾아왔을 때였다. 그제서야 아야티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처음 저를 데리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제는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마음이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당신에게 자비를 청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제는 부탁을 드릴 만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천 년을 살아도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만 년을 산다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배꼽' 2권 중에서 -